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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다양한 문화의 미리 받은 거리 쓰루미

최종 갱신일 2024년 7월 9일

쓰루미에 있던 비행장

외국의 비행가에게 자극되고 넓은 하늘에 날아 오르는 꿈을 안는 사람들이, 스스로 비행기를 만들거나 하고 있었던 다이쇼 시대, 쓰루미에는 비행장이 3개도 있었다.1921년(1921) 12월, 다마이 데루 겨우 자작의 비행기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었던 다마이 비행장이 나마무기에 있었다.1923년 4월에 시오타마치가 탄생했을 때에는 “축 읍 제도 시행”의 전단을 뿌린 기록도 있다.관동 대지진 후에 폐쇄되어, 그 철거지에 기린 맥주의 공장이 건설되었다.
1923년 5월, 슈리에트타로가 스에히로초에 제일 항공학교를 개설, 슈리히코조라고 불렸다.비행기는 7기, 훈련생은 15명.훈련 외 일반의 사람도 요금 15엔으로 요코하마 상공 일주 유람을 즐길 수 있었다.슈리히코조에는, 일본에서 2번째의 여류 비행가로서 주목을 받은 19세의 기베 시게노도 있었다.기베는 “남장의 미인”이라고 불려, 해군기로 고등 비행도 실시해, 항공계의 여성으로는 공짜 1명, 호우칸쇼를 받았다.스마트한 모습으로 프로펠러의 소리도 용감하고, 넓은 하늘에 은빛 날개 오히르 돌려주고 나는 용자에 남성 비행사는 봐 반해, 브로마이드도 팔리기 시작할 정도의 인기인이었다.
1924년에 스에히로초의 매립지(현 일본 강관 정문에서 이리후네 다리에 걸쳐서)에, 가타오카 비행장이 개설되었다.연습기 외에 정찰기나 전투기 등 8기로 비행사의 양성을 하고 있었다.슈리히코조·가타오카 비행장의 모두, 아사노 소이치로가 매립한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었지만, 공장의 진출에 의해, 슈리히코조는 지바현 후나바시에 이전해, 가타오카 비행장은 폐교했다.

서양 풀꽃의 민중 화단

시코쿠 태생의 건축가 사이조군지조가 1918년경 쓰루미에게 이주해, 스와 사카노카 위에 유리벽의 온실 3동(대략 100 평)를 세웠다.서양 풀꽃의 구근이나 모종을 가정교육, 무료로 마을의 사람에게 개방해, “민중 화단”이라고 불렸다.튤립, 팬지, 카네이션, 후리지아 등의 서양 풀꽃을 중심으로 사계 그때 그때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돌연 천국과 같은 파라다이스가 출현했다”라고 말해졌다.그러나, 당시는 아직 서양 풀꽃에 대한 관심이 얇고, 방문하는 사람도 적고, 쇼와 초에 폐원해 버렸다.

꽃창포의 미카사 소노

가게쓰엔의 번영에 자극되어, 사이타마현의 야마자키 쓰모루 창고가 1920년, 기시다니의 송이 들의 연못 주변에 마쓰나미 나무와 벚꽃길을 만들어, 연못에는 가마타의 창포 원에서 2만5000주의 모종을 옮기고 창포 원을 열었다.자연미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꽃창포의 미카사 소노”로서 유명해졌다.불꽃을 쏘아 올리거나, 큰 후지타나를 만들거나, 미국에서 카우보이를 데려오고 로데오도 피로했지만, 의외로 방문하는 사람이 적고, 1927년에 경영난에 빠져, 폐원했다.송이 들의 연못에서는 1920년, 일본이 처음으로 참가한 제7회 안트와프오린픽쿠의 수영의 예선을 했다.아사카 궁도 참석해, 기념에 스포츠의 나무의 월계수가 심어졌다.1936년, 송이 들의 연못은 정식으로 요코하마시의 풀로서 개설되어, 베를린 올림픽의 마에하타 히데코 등이 풀 개방에 와 있다.




꽃창포의 미카사 소노의 사진
꽃창포의 미카사 소노(쇼와 초년경)

민중 화단
스와자카에 있던 민중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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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미구 총무부 구정추진과

전화:045-510-1680

전화:045-510-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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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주소:tr-kusei@city.yokohama.lg.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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